판례 216413 손해배상(기)
사실관계
망인은 피고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조영술(ERCP) 검사를 받았다. 검사 당시 피고 병원은 의약분업 문제로 전공의들이 파업 중인 상황이었고, 망인에 대한 간호기록에는 "10/17 ERCP permission 없이 하기로 함"이라는 기재가 있었다. 검사 후 망인에게 급성췌장염이 발생하였고, 이후 다발성 장기부전 상태에 이르러 중환자실에서 응급치료를 받던 중 사망에 이르렀다. 원고들(망인의 유족)은 ERCP 검사 과정에서의 의료상 과실, 췌장염 발생 후 외과적 치료를 선택하지 않고 내과적 치료를 시행한 조치의 과실, 그리고 검사 전 설명의무 위반 등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쟁점
첫째, ERCP 검사 후 급성췌장염이 발생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의료진의 검사 과정상 과실을 추정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둘째, 급성췌장염 발생 후 의료진이 외과적 시술 대신 내과적 치료를 선택한 조치에 과실이 있는지 여부이다. 셋째, 침습적 의료행위에 관한 의사의 설명의무 이행에 관한 입증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그리고 설명의무 위반과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전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는지 여부이다.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의료행위의 전문성을 고려할 때 간접사실의 입증을 통한 과실 추정이 가능하지만,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만으로 막연히 중한 결과로부터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의사에게 무과실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판례:99다66328], [판례:2002다45185]). 이에 따라 ERCP 검사 후 5% 정도에서 급성췌장염이 발생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검사 과정상 과실을 부정한 원심을 수긍하였다. 또한 의사는 적절한 진료방법을 선택할 상당한 재량을 가지므로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실이라 할 수 없다고 보아([판례:91다23707]) 내과적 치료 선택에 대한 과실 주장도 배척하였다. 한편 설명의무에 관하여, 후유증·부작용의 발생가능성이 희소하더라도 그것이 전형적이거나 중대한 위험인 경우에는 설명대상이 된다고 보고([판례:94다3421], [판례:2002다48443]),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9조 등이 응급상황에서도 서면 동의를 요구하는 점, 의사 측의 입증이 용이한 반면 환자 측의 입증은 성질상 극히 어려운 점에 비추어 설명의무 이행에 관한 입증책임은 의사 측에 있다고 명시하였다. 본 사안에서는 피고 병원이 ERCP의 내용과 위험을 설명하였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설명의무 위반이 인정된다. 다만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 전부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설명의무 위반이 환자의 생명·신체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할 정도여야 하고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는데([판례:93다60953]), 본건에서는 이러한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아 자기결정권 침해에 따른 위자료 범위에서만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수긍하고 쌍방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의의 및 해설
본 판결은 의료과오소송에서 과실 추정 법리의 한계를 재확인하면서, 특히 설명의무 이행에 관한 입증책임이 의사 측에 있음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의 서면동의 규정 등을 근거로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종래 판례가 설명의무의 내용과 범위를 정립해 왔다면, 본 판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설명 사실의 문서화 필요성과 입증책임 분배의 근거를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서 도출하였다. 또한 설명의무 위반의 효과를 위자료만 청구하는 경우와 전 손해를 청구하는 경우로 이원화하여, 후자의 경우 설명의무 위반이 「민법」 [법령:민법/제750조]상 일반 주의의무 위반과 동일시될 정도여야 하고 중대한 결과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하였다. 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 보호와 의료행위의 특수성 사이에서 균형을 도모한 판단으로, 의료기관 실무에서 설명동의서의 작성·보존 관행을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관련 법령·판례
- [법령:민법/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
- [법령:민법/제390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 [법령: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제9조] (응급의료의 설명·동의)
- [법령:의료법/제24조의2] (의료행위에 관한 설명)
- [판례:99다66328] (간접사실에 의한 의료과실 추정)
- [판례:2002다45185] (과실 추정의 한계)
- [판례:91다23707] (의사의 진료방법 선택 재량)
- [판례:94다3421] (희소한 위험에 대한 설명의무)
- [판례:2002다48443] (전형적·중대한 후유증의 설명대상성)
- [판례:93다60953] (설명의무 위반과 전 손해배상의 상당인과관계 요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