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민사 서울민사지법
86가합5126

판시사항

가. 경찰관들이 형사피의자(김근태)를 구속영장 없이 또는 구속영장 발부 후 그 제시 없이 연행 구금하여, 소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의 방법으로 가혹행위를 하고, 교도관들이 고문증거(상처딱지)를 강제로 수거하여 임의로 폐기한 행위에 대하여 국가의 (위자료)배상책임을 인정한 사례 나. 검사가 형사피의자에 대하여 증거인멸 및 수사지연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가족과의 접견을 금지하고, 그의 진술을 받기 위하여 계속하여 검찰청에 소환함으로써 변호인들과의 접견교통 역시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검사 또는 교도관의 불법행위가 되지 아니한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국가배상법 제2조 , 형사소송법 제209조 , 같은법 제85조 제1항, 제88조 , 행형법 제62조, 제41조 , 같은법시행령 제135조 , 형사소송법 제91조

판례내용

【원 고】 김근태 【피 고】 대한민국 【주 문】 1. 피고는 원고에게 금 45,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1986.1.1.부터 완제일까지 연 5푼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2. 원고의 나머지 청구를 기각한다. 3. 소송비용은 이를 10분하여 그 1은 원고의, 나머지는 피고의 각 부담으로 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 피고는 원고에게 금 50,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1986.1.1.부터 완제일까지 연 5푼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는 판결. 【이 유】 1.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사실관계 갑 제1호증의 2(재정신청서), 갑 제2호증의 2(불기소사건 기록표지),3(사실과 이유),6,9(각 고발장),7(고소장),8(1차공판 녹취서),16(자술서),18,21,22,23,26,40,46,49,52,53,54,90 내지 99(각 피의자신문조서),20(범죄인지 동행보고),25(즉결심판서),30(공소장),31,85(각 판결문),55,60,65,72,86(진술조서),66,87,101,102,108(각 진술서),83,100,103(각 경위서),106(재정신청서),130,132(각 조사보고서),133(증거보전청구서),135(판결문), 갑 제3호증의 4 내지 10(각 자술서),11(피의자신문조서),29 내지 32,37,39(각 공판조서),34(조사보고서),38(사실조회촉탁회신), 갑 제4호증의 5 내지 7(각 공판조서), 갑 제5호증(책), 갑 제6호증의 2,3,4(각 증인신문조서),5(진술서),6,7(각 결정), 갑 제7호증의 5,7(각 결정), 11 내지 21,23 내지 27,29,31(각 공판조서),28(검증조서),32(판결)의 각 기재 및 증인 인재근, 송선홍의 각 증언(다만 위 각 증거 중 뒤에서 믿지 아니하는 부분 각 제외) 및 원고본인 신문결과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이에 일부 반하는 갑 제2호증의 90 내지 99,108, 갑 제6호증의 3, 갑 제7호증의 11,13,15,16,17,20,26,29의 각 일부기재 및 증인 송선홍의 일부증언은 이를 각 믿지 아니하며 달리 반증이 없다. (1) 사건의 배경 원고는, 1983.9.30.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하 민청련이라 한다)이 인간의 존엄성 구현을 최고이상으로 하고, 민중생활개선에 주력하여 대중운동발전을 위한 민중참여를 지원하고 민주주의와 자주적 민족통일을 지향하며, 회원 상호간의 연대와 상호부조를 굳건히 하고 사회운동의 구심점 형성을 위해 전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내세워 재야청년단체로서 발족한 이래 위 민청련의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이른바 민주화운동으로서 반정부운동을 전개해 오다가 1985.8.10. 민청련 제5차총회에서 그 의장직을 사임한 후, 민청련 의장으로서의 위 활동과 관련하여 같은 달 26. 유언비어유포 혐의로 즉결심판이 청구되어 구류 10일을 선고받고 서울 서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위 구류형의 집행을 마쳤다. (2) 불법구금 원고는 위 구류형의 집행을 마치자 마자 같은 해 9.4. 05:30경 소외 김영두 등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소속 경찰관들에 의하여 임의 동행 형식으로 영문도 모른채 위 유치장에서 바로 서울 용산구 갈월동 소재 위 대공수사단으로 강제연행된 후 같은 달 26.까지 그곳 5층 15호 조사실에서 구금된 상태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계 경찰관들로부터 고문을 당하면서 위 민청련 활동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위반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위 관계 경찰관들은 같은 달 4.부터 6.까지 원고를 구속영장 없이 구금하였고 같은 달 7.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뒤에도 위 구속영장을 집행함에 있어서 원고에게 이를 바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뒤늦게 같은 달 25.에야 이를 제시하였다. (3) 고문 원고에 대하여 위 수사를 담당한 위 대공수사단 소속 경감 김수현, 경정 백남은, 경위 김영두, 경사 최상남, 경장 정현규, 박병선 및 경기도 경찰국 대공분실 실장인 경감 이근안 등 관계 경찰관들은 원고에 대한 위 범죄혐의사실을 조사함에 있어서 원고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자백을 받아 내고자 같은 달 4. 위와 같이 원고를 연행해 온 직후부터 같은 달 25.까지 사이에 아래와 같이 전후 10여차례에 걸쳐 위 조사실에서 번갈아가며 원고에게 소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 등의 방법으로 고문을 감행하였다. (가) 1985.9.4. 07:30경부터 같은 날 12:30경까지 5시간 동안 원고가 진술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위 김수현은 원고에게 "당신 많이 깨져야겠다"고 하면서 뺨을 때려 강제로 무릎을 꿇게 하고, 위 백남은은 "정말 버틸거냐, 여기서도 진술거부가 통할 줄 아느냐, 우리는 너를 깨부술 것이다"라고 폭언을 하면서 위 최상남으로 하여금 원고의 옷을 벗기게 하여 "팬츠"만 입은 알몸으로 만들고 밴드로 눈을 가린 다음, 각목 4, 5개를 사용하여 길이 약 1.7미터, 높이 약 1미터 정도로 그곳 세면대에 밀착시킬 수 있도록 제작된 대(이하 고문대라 한다)위에 담요를 깔고 원고를 그 위에 눕혀 담요를 말아 몸을 감싼 후, 군용 허리띠와 같은 줄로 발목, 무릎, 허벅지, 배 및 가슴 등을 묶고 얼굴 위에 두꺼운 수건을 덮어 씌운 다음, 위 최상남 및 정현규 등이 원고의 머리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동안 위 김영두가 주전자 및 샤워기로 원고의 얼굴 위에 물을 부어서 원고로 하여금 호흡곤란 등으로 고통을 받게 하여 소위 물고문의 방법으로 원고를 고문한 것을 비롯하여 같은 날 20:00경부터 그 다음날 01:00경까지 5시간 동안 원고에게 그가 폭력주의자이고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자라고 시인하도록 강요하고 민주화운동의 핵심인물을 대라고 추궁하면서 위 김영두, 최상남 등이 다시 같은 물고문의 방법으로 원고를 고문하였다. (2) 같은 달 5. 20:30경부터 그 다음날 01:00경까지 4시간 30분 동안, 위 김수현, 백남은 등은 원고에게 소외 이을호의 소위 민족민주주의 혁명론(National Democracy Revolution : N.D.R)을 원고가 교양했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하고, 위 김영두, 최상남 등은 원고를 팬츠까지 벗긴 알몸으로 만들어 같은 방법으로 다소 약한 정도의 물고문을 한 다음, 이어서 위 이근안이 원고의 발가락 부위에 전기도선을 연결하여 붕대로 감은 후, 처음에는 짧고 약하게 전류를 보내다가 점점 길고 강하게 전류를 보내어 원고로 하여금 극심한 통증을 느끼게 함으로써 소위 전기고문의 방법으로 원고를 고문하였으며, 같은 달 6. 21:00경부터 그 다음날 01:00경까지 4시간동안 다시 원고에게 소외 문용식의 민족민주주의 혁명론을 원고가 교양하였다고 인정할 것을 강요하면서 위 이근안 등이 같은 방법으로 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을 가하였다. (다) 같은 달 8. 10:00경부터 13:30경까지 3시간 30분 동안, 위 김수현이 원고가 1975.5.22.경 서울대학교에서 있었던 시위의 배후조종자로 지목되어 그 이후 1977.7.경까지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혹시 북한에 월북하여 그 곳 형들을 만나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그동안의 원고의 행적을 추궁하는 가운데, 위 김영두, 최상남, 이근안 등이 같은 방법으로 원고에게 번갈아 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을 가하였으며, 다시 같은 날 19:00경부터 24:00경까지 5시간 동안 원고에게 민주화운동의 배후를 밝히라고 추궁하면서 같은 방법으로 원고를 고문하였다. (라) 같은 달 10. 19:00경부터 22:00경까지 3시간 동안 위 김영두, 최상남, 박병선 등이 원고에게 대학시절의 학생운동관계, 교우관계, 특히 재일동포 유학생과의 접촉관계 등을 추궁하면서 위 고문대 위에 같은 방법으로 원고를 결박한 다음 위 김영두가 금속막대를 원고의 양발등 위에 붕대로 묶고 전기기구를 접촉시켜 위 금속막대에 강한 진동을 일으켜서 그 진동에 의하여 고통을 가하는 소위 전기봉고문을 가하였다. (마) 같은 달 13. 22:00경부터 그 다음날 02:30경까지 4시간 30분동안 위 김수현, 김영두, 최상남, 이근안 등이 원고에게 민청련의 재정문제와 배후관계 등을 추궁하면서 "오늘은 금요일이고 13일이다. 최후의 만찬일이니 각오하라"면서 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을 가하고, 이어서 같은 달 14. 03:00경부터 05:30경까지 2시간 30분 동안 위 김수현, 박병선 등이 원고에게 학생운동의 배후로서 민주화추진위원회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자백하라면서 같은 방법으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가하였다. (바) 같은 달 20. 20:00경부터 22:30경까지 2시간 30분 동안 위 김수현, 김영두, 최상남, 정현규, 박병선 등이 원고에게 위 문용식, 이을호의 민족민주주의 혁명론에 대하여 반복진술하도록 하고 이를 민청련의 지도이념으로 결정했다고 자백하라면서 같은 방법으로 물고문 및 전기고문을 가하였다. (사) 같은 달 25. 05:00경 위 김수현이 원고가 위 문용식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부인한다는 이유로 팔꿈치로 원고의 가슴부위를 수회 구타하는 등 원고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아) 위 관계 경찰관들은 위와 같이 원고를 고문함으로써 원고로 하여금 정신쇠약 및 심한 두통을 일으키게 하였고 위 고문대 위에서의 고통에 겨운 몸부림으로 수개월 간의 치료를 요하는 양발뒷꿈치열창 등의 상해를 입게 하였다. (4) 가족 및 변호인의 접견교통의 제한 그 후 원고는 같은 달 26. 위 대공수사단에서 서울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됨에 따라 그 이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있으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담당검사인 소외 김원치의 설득에도 처음부터 계속 진술거부의 태도를 보이자 위 검사가 원고에 대하여 증거인멸 및 수사지연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가족과의 접견을 금하고 원고의 진술을 받기 위하여 계속하여 원고를 검찰청에 소환함으로써 원고는 가족과의 접견교통이 금지되고 변호인들과의 접견교통 역시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5) 고문증거물의 탈취, 인멸 한편, 원고는 같은 해 11. 초순경에 이르러 위 고문으로 인한 발뒷꿈치 상처가 아물어 그 상처딱지가 떨어지게 되자 이를 차후 위 고문의 증거물로 삼고자 휴지로 싸서 위 구치소 내에서 스스로 보관해 오던 중 같은 해 12.13경 변호인과의 접견시 변호인에게 이를 건네주려다가 입회 교도관에 의하여 이를 제지당하였는데, 그 후 소외 송선홍, 최덕, 김용근 등 교도관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같은 날 18:00경 원고에 대하여 검방, 검신을 실시한 끝에 원고로부터 휴지에 싸인 위 상처딱지를 강제로 수거하여 이를 폐기함으로써 결국 위 고문의 증거물은 인멸되고 말았다. (6) 사건 이후의 정황 원고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불법구금 및 고문을 당한 후 1985.9.26. 검찰로 송치되어 같은 날 15:00경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원고의 처인 소외 인재근과 변호인인 소외 김상철 변호사를 만나 잠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고문으로 인한 상처를 보여 주며 그동안 고문당한 사실을 말함으로써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인권위원회의 조사보고를 통하여 1985.12.30경 위 위원회 관계 변호사들의 이름으로 위 고문관계 경찰관 등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시키게 되고 위 인재근 역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각계에 원고의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는 한편 1986.1.6.경 서울지방검찰청에 위 고문관계 경찰관 등을 고소하기에 이르러, 검찰에서는 원고의 위 고문 피해사실에 대하여 사회의 이목이 점점 집중되는 가운데 위 고소, 고발에 따른 위 고문사실 등에 대하여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하였으나 수사 결과 관계 경찰관 등에 대하여 모두 고문 등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의 불기소처분이 내려지자, 위 고소인 및 고발인 등이 서울고등법원에 1987.1.20. 및 같은 해 3.11. 각 재정신청을 함으로써 (87초25, 37)같은 법원에서 위 각 재정신청사건을 병합심리한 끝에 1988.12.15. 피신청인 중 소외 김수현, 김영두, 최상남, 백남은 등 피고인에 대하여 서울형사지방법원의 심판에 부하는 재정신청 인용결정이 내려짐에 따라 공소유지담당자로 지정된 소외 김창국 변호사의 기소에 의하여 위 피고인들에 대하여 같은 법원 88고합1441호 독직폭행사건으로 재판이 시작되어 1991.1.30. 위 피고인들 모두에게 원고에 대한 위 고문사실에 대하여 유죄판결이 선고되었고, 한편, 원고는 위 고문피해 이후 검찰수사를 거쳐 1985.10.26. 같은 법원에 국가보안법위반죄 등으로 기소되어 1986.3.6. 제1심에서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같은 해 7.3. 제2심에서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은 다음 같은 해 9.23. 상고심에서 원고(피고인)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위 제2심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나. 불법행위의 성립 및 손해배상의무 (1) 형사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된 원고에 대하여 관계 경찰관들이 폭력을 행사해서라도 자백을 받아내고자 소위 물고문 및 전기고문 등의 방법으로 가혹행위를 한 사실은 앞에서 인정한 바와 같은바, 이러한 행위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행위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고문을 금지하고 형사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을 보장한 헌법규정(제12조 제2항)에 위반된 행위임이 명백하고, 다음으로 원고에 대한 이 사건 불법구금행위를 보건대, 형사피의자에 대한 임의동행은 본인의 동의가 없는 한 허용될 수 없는 것으로서 위법하다 할 것이고, 또한 형사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의 집행에 있어서 본인에게 구속영장을 바로 제시하지 아니하고 뒤늦게 제시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제209조에 의하여 피의자의 구속에 준용되는 같은 법 제85조 소정의 구속영장집행절차 및 제88조 소정의 피의사실 고지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할 것인바, 이 사건의 경우 원고에 대한 구속영장 없이, 또는 구속영장발부 후 그 제시 없이 원고를 연행, 구금한 것은, 원고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관계경찰관들에 의하여 영문도 모른채 연행되고 그 직후부터 계속 구금된 상태에서 진술거부 등을 이유로 전후 10여차례에 걸쳐 고문을 당한 점에 비추어, 원고의 동의 없이 위법하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불법행위임을 면할 수 없다 할 것이고, 또한 앞에서 본 고문증거(상처딱지)의 탈취, 인멸의 점 역시 위 상처딱지가 원고의 이 사건 고문피해사실에 대한 유력한 객관적증거로서 행형법 제62조 , 제41조 소정의 구치소 재소자의 휴대품 영치규정과 동 시행령 제135조 소정의 재소자의 소지품처리규정에 의하여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구치소에 영치시켜야 할 것임에도 관계 교도관들이 이를 강제로 수거하여 임의로 폐기한 이상 이는 행형법 및 동 시행령의 위 각 규정에 반하는 행위로서 위법하다 할 것이며, 한편 앞에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원고는 위 관계 경찰관 또는 교도관들의 위 각 불법행위로 인하여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신체적, 정신적으로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을 받고 그 영혼과 인격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기게 되어 앞으로 그 상처와 충격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은 경험칙상 쉽게 인정될 수 있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위 공무원들의 위 각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가 입게 된 위 정신적 고통에 대하여 금전으로나마 그 손해를 배상하여 이를 위자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2) 원고는 앞에서 본 가족 및 변호인과의 접견교통제한의 점에 대하여도 검사 또는 구치소 교도관의 불법행위라는 전제하에 금 5,000,000원의 위자료 지급을 구하나, 형사소송법 제209조에 의하여 준용되는 같은 법 제91조의 규정의 의하면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죄증을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변호인 아닌 자와의 접견교통을 금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고, 한편 원고는 검찰에 송치된 첫날부터 진술을 거부하여 검사가 원고에 대하여 증거인멸 및 수사지연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가족과의 접견을 금하고 원고의 진술을 받기 위하여 계속하여 원고를 검찰청에 소환함으로써 원고는 가족과의 접견이 금지되고 변호인들과의 접견교통 역시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된 사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바, 위 사실에 의하면 검사가 원고에 대하여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변호인 이외의 자와의 접견교통을 금지한 조치는 형사소송법의 위 규정 소정의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할 것이고, 나아가 변호인과의 접견교통을 제한하였다는 점은 변호인과의 접견교통이 결과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점만으로는 이를 검사 또는 교도관의 불법행위로 돌릴 수는 없다 할 것이고 달리 검사 또는 교도관이 불법으로 변호인과의 접견교통을 제한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 없이 이유 없다. 2. 손해배상의 범위 그러므로, 나아가 피고가 원고에게 배상하여야 할 위자료의 수액에 관하여 보건대, 이상에서 본 이 사건 불법행위의 내용과 그 경위 및 전말, 원고의 피해정도,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이 사건의 사회적 의미 및 원고의 학력, 경력, 가족관계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가 원고에게 지급하여야 할 위자료는 이 사건 고문행위에 대하여 금 35,000,000원, 불법구금행위 및 고문증거의 탈취, 인멸행위에 대하여 각 금 5,000,000원씩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3. 결론 그렇다면, 피고는 원고에게 위에서 인정한 위자료 합계 금 45,000,000원(35,000,000원+5,000,000원+5,0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위 각 불법행위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바에 따라 1986.1.1.부터 완제일까지 민법 소정의 연 5푼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므로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의 부담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89조 , 제92조를 가집행선고에 관하여는 같은 법 제199조를 각 적용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고현철(재판장) 김봉학 문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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