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 일반행정 서울행법

친일반민족행위자지정처분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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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구합49732

판시사항

[1]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적극) [2]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의 직계비속이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지 여부(적극) [3]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위헌인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1]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 한다)’에 의하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를 선정하고 조사대상자가 행한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한 후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대통령 및 정기국회 기간 중 국회에 보고하며,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사료를 편찬한다. 그런데 위 위원회가 조사대상자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하는 경우 조사대상자의 명예감정은 물론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명예가 손상을 입어 그 인격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구나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되면 그에 관하여 작성된 조사보고서와 사료가 대외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으므로, 위 위원회가 한 친일반민족행위의 결정은 친일반민족행위를 하였다고 결정된 조사대상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이는 단순한 학술적 조사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이 있는 법 적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제2조, 제3조, 제5조에서 특별법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의 재산 및 그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일정한 요건하에 국가에 귀속하도록 하고 있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조사 및 선정을 함에 있어서 특별법 제3조의 규정에 따라 위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원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위 위원회의 결정은 위와 같은 점에서도 국민의 재산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법 적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위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 것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 [2]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처분으로 인하여 조사대상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그 직계비속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위 처분은 그 직계비속의 명예감정을 해칠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명예가 손상을 입어 그들의 인격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되는 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부터 상속받은 재산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조사대상자의 직계비속은 위 처분으로 인하여 재산권을 제한받을 위험에 처하게 되는 점,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9조 제2항, 제24조, 제28조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본인은 물론 직계비속도 조사대상자 선정에 관한 통지수령권 및 이의신청권, 조사과정에 있어서의 의견진술권, 조사 결과에 관한 이의신청권을 가지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조사대상자의 직계비속은 위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은 헌법 전문에서 천명한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의 의미를 되살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한 자들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확인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이를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의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그 제정 목적의 정당성이 있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반민족적인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 중추원에 참여한 인물들이 발탁된 경위, 중추원 고문과 참의로서 활동한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일제의 총독정치와 식민지배 협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하였다면, 그 자체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볼 수 있으므로 위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이나 참의가 된 경위, 활동의 구체적인 태양 등 그 활동 내용의 여하를 불문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것은 특별법의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고, 위와 같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덜 침해적인 수단을 상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며, 위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친일반민족행위의 구체적인 행위유형을 세부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조사대상자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위 특별법 제정 목적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특별법 규정에 의하여 보호되는 공익이 침해되는 조사대상자 또는 직계비속의 권익보다 더 크다고 보아야 하므로, 위 특별법 제2조 제9호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

참조조문

[1]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4조, 제25조, 제26조, 제27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3조, 제5조 / [2] 행정소송법 제12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19조 제2항, 제24조, 제28조 / [3]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9호, 헌법 제37조 제2항

판례내용

【원 고】 【피 고】 행정안전부장관 【변론종결】2010. 9. 2. 【주 문】 1.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2.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청구취지】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이 사건 위원회’라 한다)가 2009. 6. 23. 망 소외 1(이하 ‘망인’이라 한다)의 행위를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라 한다) 제2조 제9호의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한 처분을 취소한다. 【이 유】 1. 처분의 경위 가. 당사자 등의 지위 1) 망인은 1889. 11. 6. 출생하여 1908.경부터 1910.경까지 상주경무고문분견소 통역생으로 활동하다가, 1922.경부터 충북 영동군 영동금융조합 감사와 평의원, 영동소방조합 고문, 영동삼림조합 평의원, 영동군농회 특별의원과 평의원, 재향군인회 영동분회 고문, 영동곡물조합 조합장, 영동면 농촌진흥위원회 위원, 영동상공회 회장, 국방의회 영동지회 고문 등을 역임하고, 1933.경부터 충북도회 의원, 충북 군사후원연맹 평의원, 영동군 역원, 영동군 부회장,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충청북도연맹 참여(參與) 및 영동군 고문, 국민정신총동원 영동연맹 이사장 등으로 활동하고, 1939. 6. 3.부터 1942. 6. 2.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바 있으며, 1952. 6. 11. 사망하였다. 원고는 망인의 손자이다. 2) 이 사건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의 선정 및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등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규명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특별법 제3조에 따라 설치되었고, 이 사건 위원회의 활동기간이 2009. 11. 30. 만료됨에 따라 피고가 이 사건 처분에 관계되는 권한을 승계하였다. 3) 이 사건 위원회는 2008. 8. 11. 특별법 제19조 제1항에 기하여 망인을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로 선정한 후, 망인이 “1939. 6. 3.부터 1942. 6. 2.까지 3년 동안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고, 참의 재임 중 제21회(1940년), 제22회(1941년) 중추원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특히 제21회(1940년) 회의에서는 국민정신총동원운동에 대한 강화책으로 농촌의 여러 단체들을 총동원연맹에 통합시키고, 순회강연과 인쇄물 배포를 통한 민중교화와 일본어 보급의 필요성, 모범 애국민을 일본 성적(聖跡)으로 순방시켜 황국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41. 6.에는 중추원 부여신궁공사 근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2009. 6. 23. 망인의 위와 같은 행위를 특별법 제2조 제9호에서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이하 ‘이 사건 처분'이라 한다)하고, 원고에게 이를 통지하였다. [인정 근거] 다툼 없는 사실, 갑 제1, 3, 4호증, 을 제1 내지 7호증(각 가지번호 포함)의 각 기재, 변론 전체의 취지 2. 본안전 항변에 대한 판단 가. 피고의 주장 1) 처분성 여부 특별법에 의하면, 이 사건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를 조사한 후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고, 조사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대통령 및 정기국회 기간 중 국회에 보고하며,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사료를 편찬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위원회가 한 친일반민족행위 결정은 이 사건 위원회가 수행하는 순수한 조사활동의 결과에 불과하여, 그것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나 원고의 권리의무에 미치는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 2) 원고적격 유무 이 사건 위원회의 이 사건 처분으로 사자(死者)인 조사대상자의 법률상 이익이 침해되지 않았고, 나아가 원고는 조사대상자도 아니어서 그 법적 지위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므로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 나. 판단 1) 처분성 여부에 대한 판단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이라 함은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을 말하는 것으로서(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이 있는 법 적용행위를 의미한다. 특별법 제4조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의 선정, 조사대상자가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조사, 친일반민족행위와 관련된 국내외 자료의 수집 및 분석,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의 결정에 관한 사항 등을 이 사건 위원회의 업무로 규정하여 이 사건 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조사 및 결정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고, 같은 법 제25조에 의하면 이 사건 위원회는 위원회 활동을 조사보고서로 작성하여 매년 대통령 및 정기국회 기간 중 국회에 보고하여야 하며, 같은 법 제26조에 의하면 이 사건 위원회는 그 활동기간 이내에 친일반민족행위에 관한 사료를 편찬하여야 하고, 같은 법 제27조에 의하면 이 사건 위원회는 위 조사보고서와 사료를 공개하여야 한다. 한편, 헌법 제10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이 보호하는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개인의 일반적 인격권이 보장된다. 그런데 이 사건 위원회가 조사대상자의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하는 경우 조사대상자의 명예감정은 물론 그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명예가 손상을 입어 그 인격권이 직접적으로 침해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되면 그에 관하여 작성된 조사보고서와 사료가 대외적으로 공개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 사건 위원회가 한 친일반민족행위의 결정은 친일반민족행위를 하였다고 결정된 조사대상자의 일반적 인격권을 제한하는 것이어서 이는 단순한 학술적 조사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이 있는 법 적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제2조, 제3조, 제5조에서 특별법 제2조 제6호 내지 제9호의 행위를 한 자의 재산 및 그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일정한 요건하에 국가에 귀속하도록 하고 있고,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조사 및 선정을 함에 있어서 특별법 제3조의 규정에 따라 이 사건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를 원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사건 위원회의 결정은 위와 같은 점에서도 국민의 재산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법 적용행위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이 사건 처분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피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2) 원고적격 유무에 대한 판단 살피건대,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조사대상자는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그 직계비속인 원고도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므로, 이 사건 처분은 원고의 명예감정을 해칠 여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조사대상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명예가 손상을 입어 그들의 인격권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되는 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2호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부터 상속받은 재산도 친일재산으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조사대상자의 직계비속인 원고는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하여 재산권을 제한받을 위험에 처하게 되는 점, 특별법 제19조 제2항, 제24조, 제28조에 의하면 조사대상자 본인은 물론 원고와 같은 직계비속도 조사대상자 선정에 관한 통지수령권 및 이의신청권, 조사과정에 있어서의 의견진술권, 조사 결과에 관한 이의신청권을 가지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원고는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이 부분 피고의 주장도 이유 없다. 3. 이 사건 처분의 적법 여부 가. 원고의 주장 1) 망인은 일제강점하에 조선총독부의 강요에 못이겨 1939. 6. 3.부터 1942. 6. 2.까지 중추원 참의직에 있으며 중추원 회의에 참석만 하였을 뿐이므로, 망인이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라고 할 수 없다. 2) 망인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적이 없어,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른 조사 당시 불기소처분을 받았는바, 이 사건 위원회가 60여 년이 지난 후에 특별법 제2조 제9호에 의하여 이 사건 처분을 한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과 소급입법에 의한 불이익금지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 3) 특별법 제2조 제9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로 활동한 사실만 있으면 그 재직 기간의 장단, 별도의 독립운동에의 참여 또는 지원, 기타 중추원 참의에 임명된 경위 및 구체적인 활동내용에 있어서의 특별한 사정 등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어떠한 예외사유도 규정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 내지 비례의 원칙에 위반하여 위헌이라 할 것인데, 이 사건 처분은 위헌인 위 조항에 근거하여 위법하다. 나. 관계 법령 별지 관계 법령 기재와 같다. 다. 판단 1) 망인의 행위가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 특별법 제2조 제9호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는바, 앞서 본 바와 같이 망인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고문으로 활동한 이상 그 행위는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정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할 것이다. 2) 일사부재리의 원칙 및 소급입법의 금지 위반 여부 일사부재리의 효력은 확정재판이 있을 때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원고 주장과 같이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을 받았다고 하여도 이로써 이 사건 처분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 또한, 헌법 제13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소급입법 금지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데, 특별법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 8. 15.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하여진 조사대상자로 선정된 자의 행위 중 일정한 행위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하여 이를 조사대상자 또는 직계비속 등에 통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일 뿐, 친일반민족행위를 한 것으로 확정된 자 또는 그의 직계비속 등에 대하여 참정권을 제한하거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처분이 소급입법의 금지 원칙에 반하여 위법하다고 할 수도 없다. 3)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위헌인지 여부 가) 중추원의 성격과 기능 을 제8, 9, 10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인정된다. 중추원은 1894년 갑오개혁 당시 정치개혁 과정에서 설치된 것으로서, 초기에는 정2품 이상의 실직(實職)이 없는 인사들을 우대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가, 1895년 및 1898년 관제가 개정되면서 점차 권한이 강화되어 법률의 개정에 관한 사항 등 국가중요 사안에 관하여 심사의정(審査議定)하는 기구로 변화되었다. 그러다가 한일합병 이후 1910. 10. 1. 시행된 조선총독부 중추원관제(조선총독부 칙령 제355호)에 의하여 설치된 중추원은 조선총독부 자문기관으로서 일제가 대한제국의 관제나 행정기구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인상을 주고 식민지배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기 위하여 설치된 것이다.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처음에는 의장, 부의장 1인, 고문 15인, 찬의 20인(칙임대우), 부찬의 35인(주임대우), 서기관장 35인, 서기관 2인, 통역관 3인으로 구성되었다가, 3·1 운동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민족분열정책을 기조로 하는 문화통치로 전환되면서 1921. 4.경 관제가 개정되었는데, 찬의와 부찬의를 합하여 참의로 개칭하여 칙임대우·주임대우로 구분하고 인원을 65명으로 조정하였으며 고문에게만 주어졌던 의결권을 참의에게도 확대 부여하고 임기도 3년으로 정하여 중임할 수 있게 하였다. 위와 같은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그 구성 및 기능이 1910년대(통상 제1기라고 한다), 1920년대(통상 제2기라고 한다), 1930년대 이후(통상 제3기라고 한다)에 각각 달라졌는데, 제1기는 주로 한일합병에 협력한 이른바 ‘친일귀족’에게 주어진 유명무실한 관직의 성격이 강했고, 제2기는 일제의 총독부와 교감이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총독통치의 효과를 얻기 위한 조사업무 위주로 활동하였으며, 제3기는 총독부의 협조기관이면서도 그들의 정치적 참여권이 점점 강해져 자문기관의 성격이 점점 짙어지게 되었다. 한편,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당초 한일합병 과정에서 공적을 세웠던 고위관료 집단, 도지사와 참여관 등의 관료, 대표적인 친일단체의 간부, 유력한 대실업가, 도평의회, 도회, 부회 등과 같은 자치 및 자문기구에 참여한 공직자 등 각종 경로를 통하여 일제에 협력한 대표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었으나,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이른바 문화통치 방식을 채택하면서 이전의 고문 중심의 중추원에서 참의 중심의 중추원으로 관제가 개편되는 한편, 중추원 참여 인물들도 종전의 고위관료 경력자 중심에서 지방 유지를 포함한 민간유력자들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특히 1930년대 일제의 만주 침략 이후에는 민간유력자를 적극적으로 총독정치의 선전에 동원하려는 의도로 일제의 지방통치 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지방대표를 포함한 민간유력자 출신을 참의로 발탁하여 각종 개량사업과 농촌진흥운동 및 황민화 사업의 일환으로 ‘심전개발’ 등의 내선융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활용하였고,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0년대에는 조선사회를 전시 총동원체제로 개편하기 위해서 중추원 참의들이 침략전쟁과 황민화정책의 선전, 징병과 징용 등의 선전 및 선동에 적극적으로 동원되기도 하였다. 나) 목적의 정당성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라고 규정하여 3·1운동의 독립정신을 계승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천명하고 있다. 위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 헌법의 연혁적·이념적 기초로서 헌법이나 법률해석에서의 해석기준으로 작용한다고 할 것인바, 특별법은 위 헌법 전문에서 천명한 3·1운동의 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의 의미를 되살려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여 독립운동을 한 자들의 공헌과 희생을 바탕으로 이룩된 것임을 확인하고,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이를 역사적인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의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이러한 목적에 비추어 보면, 특별법 제2조 제9호는 그 제정 목적의 정당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다) 방법의 적정성 및 침해의 최소성 앞서 본 바와 같이 조선총독부 중추원은 근본적으로 일제의 총독정치와 식민지배의 합리화 도구로 설치된 기구이고, 그 간부에 해당하는 중추원 고문 및 참의는 일제의 조선통치에 도움이 된 자 또는 통치과정에서 새로이 공로가 있는 자, 일제의 식민정책이나 지방통치 등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온 자들이 발탁·임명되어 왔으며, 중추원 고문 및 참의 등은 그 시기에 따라 내선융화정책을 추진하는데 활용되거나 침략전쟁과 황민화정책의 선전, 징병과 징용 등의 선전 및 선동에 동원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를 소극적으로 합리화하거나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등의 역할을 맡아왔다. 이러한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반민족적인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 중추원에 참여한 인물들이 발탁된 경위, 중추원 고문과 참의로서 활동한 내용 등에 비추어 보면 일제의 총독정치와 식민지배 협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하였다면, 그 자체로 친일반민족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고문이나 참의가 된 경위, 활동의 구체적인 태양 등 그 활동 내용의 여하를 불문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한 것은 특별법의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당한 수단이고, 위와 같은 입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덜 침해적인 수단을 상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라) 법익의 균형성 특별법 제2조 제9호가 친일반민족행위의 구체적인 행위유형을 세부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조사대상자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나 참의로 활동한 행위 자체를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특별법 제정 목적과 입법 취지 등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특별법 규정에 의하여 보호되는 공익이 침해되는 조사대상자 또는 직계비속의 권익보다 더 크다고 봄이 상당하다. 마) 소결 그렇다면 특별법 제2조 제9호는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원고의 주장은 이유 없다. 4.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별 지] 관계 법령 : 생략] 판사 하종대(재판장) 조기열 장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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