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나34938
판시사항
대학교의 학내 분규사태와 관련하여 교수협의회에서 별도로 총장에 선출되어 적법하게 임명된 총장에 대해 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하는 등 배격활동을 한 교수에 대한 해임처분이 징계권을 남용한 것으로서 무효라고 한 사례
참조조문
판례내용
【원고, 항소인】 원고 【피고, 피항소인】 학교법인 대양하원 【원심판결】 제1심 서울지법 동부지원(1991.7.3. 선고 90가합8679 판결) 【주 문】 1. 원심판결을 취소한다. 2. 피고가 1990.5.4. 원고에 대하여 한 교수직해임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 3. 피고는 원고에게 1990.5.6.부터 피고가 원고에게 복직을 허용 할 때까지 금 1,611,766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 4. 소송비용은 1, 2심 모두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 【청구취지 및 항소취지】 주문과 같다. 【이 유】 1. 해임처분무효확인청구에 대한 판단 가. 피고 법인은 사립학교법에 따라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기독교정신에 입각하여 초등보통교육, 고등보통교육 및 대학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하여 설립되어 그 산하에 세종대학교, 서울 세종고등학교 및 세종국민학교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 법인이고, 원고는 1981.3.2. 위 세종대학교의 (학과이름 생략) 조교수로 발령을 받아 1985.4.경 같은 학과의 부교수로 승진되어 재직중이었던 사실, 그런데, 1990.3.8. 당시 위 세종대학교의 총장인 소위 소외 1은 원고가 (1) 적법한 절차에 의하여 임명된 위 세종대학교의 소외 1 총장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1989.9.20. 15:00경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교수협의회를 소집하여 소외 1 총장의 배척, 보직 임명거부 등 집단행위를 하였고, (2) 같은 해 10.3. 위 교수협의회에서 직선총장후보로 출마한 후 학보사기자들과 회견하면서 "소외 1 교수를 퇴진시켜야 한다"고 하는 등 위 소외 1 총장을 배척하도록 학생들을 선동 하였고, (3) 사립학교총장의 선출에 관한 법적 절차를 위배하여 같은 해 10.6. 위 교수협의회에서 직선총장으로 선출되자 이를 수락하고 "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성심성의껏 노력을 다하겠다."고 인사말을 하였고, (4) 같은 해 10.10. 총학생회에서 주관한 "민주총장환영대회 및 합법성쟁취평화대행진"에 참석하여 "학원민주화를 위하여 노력을 다하겠다"고 인사말을 하며 총장행세를 하여 과격한 학생소요를 자극하고, (5) 같은 해 10.6. 교수회의에서 결정한 "학원정상화를 위한 교수대책위원회"를 임의로 구성하고 그 위원회의회장이 되어 소위 민주총장 지위 확보를 위한 일련의 행위를 자행하고, (6) 같은 해 9.22. 교수협의회 회장의 자격으로 서울지방법원동부지원에 "총장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접수시켜 적법하게 임명된 소외 1 총장을 배척하고 총장직무집행을 저지하려는 집단적인 업무방해행위를 하여 학내소요를 가열화시켰고, (7) 총장이 아니면 세종대학교 학보의 발행인이 될 수 없음에도 같은 해 10.27. 자위 학보 제406호를 원고 명의로 발행하였고, (8) 총장이 아니면서도 1989년도 졸업생 앨범에 자신을 총장으로 사진과 이름을 게재케하였고, 학교당국에서는 학원소요로 인하여 1989년도 학위수여식을 무기연기하였는데 1990.2.17. 소위 졸업준비위원회, 총동문회, 총학생회가 임의로 주최한 "1989년도 학위수여식"에 참석하여 졸업생, 재학생, 학부모 등이 모인 자리에서 사회자로부터 총장으로 소개받아 격려사를 하였고, (9) 1990.2.19.부터 21.까지 충북 보은군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열린 1990학년도 신입생 예비대학에서 신입생들에게 배부한 자료집에 자신이 총장인 양 자기의 사진 아래 세종대학교 총장 환영사를 게재하여 "세종대학교는 비리와 특전적 횡포를 일삼아 오는 재단으로 인해 대학구성원들의 합의된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학내의 민주화는 거부당하고 자율적 결의가 존중되기는 커녕 오히려 짓눌림을 당하는 어려운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고 하여 학생을 선동자극하였고, (10)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에 의하여 총장이 아니면 세입징수를 할 수 없음에도 세종대학교 총장 원고란 명의의 등록금납부고지서, 등록금영수필통지서, 등록금영수증 등 용지를 인쇄하여 이를 학생에게 교부하고 따로 등록창구를 개설하며 국민은행 화양동지점에 원고 명의의 구좌를 개설하여 1990.2.15.부터 학생들의 등록금을 수납하였고, (11) 1990.3.5.자 세종대학학보의 "짧게 나눈 얘기"란에 "현학내사태는 경제적, 계급적으로 가진 자, 지배자들이 5공으로 회귀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며 소외 1체제로 학내 민주화요구를 외면하고 재단독재적 학교운영방식을 답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학내 비민주적 요소를 척결하기 위하여 2만 세종가족의 힘을 모아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라는 대담기사를 실었고, (12) 총장자격을 참칭하고 총장행세를 하면서 소위 운동권학생들이 소외 1 총장의 직무집행과 학교당국의 제반 업무수행을 저지하는 행위를 은연중 선동 내지 지원하는 등으로 교원의 본분에 배치되는 행위를 하고, 학생지도의무를 위반하였으며,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위 학교에 설치된 교원징계위원회에 원고의 징계를 요구하다, 같은 해 4.25. 위 교원징계위원회에서는, 원고에게 사립학교법 제55조,국가공무원법 제56조, 제66조 제1항, 사립학교법 제61조 제1항 각호, 세종대학교 인사규정 제19조 제2호 및 제4호에 해당하는 징계사유가 있다고 하여 원고에 대한 교수직해 임의결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피고는 1990.5.4. 원고에 대하여 교수직해임처분통지를 한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성립에 다툼이 없는 을 제40호증(정관), 원심증인 소외 2의 증언에 의하여 각 진정성립이 인정되는 을 제1호증의 1(교원징계 의결요구서), 을 제1호증의 2(징계의결요구서), 을 제1호증의 3(징계사유), 을 제2호증의 1(교원징계의결경과보고), 을 제2호증의 2(징계의결서), 을 제2호증의3(징계사유서)의 각 기재에 의하여 이를 인정할 수 있고, 한편, 사립학교법(1990.4.2. 법률 제422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의 규정과 위 을 제40호증 및 을 제6호증(세종대학교 교원인사규정)의 각 기재에 의하면 위 법 제53조 제1항에 각급학교의 장은 당해 학교를 설치, 경영하는 학교법인 또는 사립학교경영자가 감독청의 승인을 받아 임명하도록 되어 있고, 같은 법 제15, 16조에 의하면 학교법인에는 이사회를 두고 그 이사회에서는 학교법인이 설치한 사립학교의 장의 임면에 관한 사항을 심의, 결정하게 되어 있고, 피고 법인의 정관에도 위 법과 같이 세종대학교 총장은 피고 법인의 이사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는 사실, 한편 위 법 제61조 제1항에서 사립학교의 교원이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때에는 당해교원의 임명권자는 징계의결의 요구를 하여야 하고, 징계의결의 결과에 따라 징계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그 제2호에서 직무상의 의무에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때, 그 제3호에서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한 때를 규정하고, 같은 조 제2항에서 징계의 종류로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을 정하고 있는 사실 및 피고 법인의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세종대학교 교원의 인사관리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 교원인사규정 제19조에서는 교원의 의무로서 충실한 강의, 성실한 학생지도, 학문에 대한 부단한 연구, 대학발전에의 협조와 공헌을 규정하고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나. 원고는, 원고에 대한 이 사건 해임처분은 그 징계사유가 없거나 그 징계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징계의 양정이 너무 과중하여 재량권을 일탈한 무효의 처분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무효확인을 구함에 대하여, 피고는 교원은 사립학교법, 국가공무원법, 공무원복무규정 등상의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며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안되는데도 적법하게 선출되어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은 위 대학교의 총장을 배격하고 스스로 일부교수들에 의하여 총장으로 선출되어 총장으로 행세하는 등 운동권학생들의 과격학생운동을 선동, 조장함으로써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하였으므로 이를 이유로 한 해임처분은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다. 그러므로 먼저, 피고가 내세우고 있는 원고에 대한 위 징계해임처분의 사유가 되는 원고의 비행사실의 존부에 관하여 살피건대, 갑 제1호증(불기소증명원), 갑 제2호증의 1,2(각 공판조서 사본), 3(판결문사본), 갑 제3호증(불기소결정사본), 갑 제4호증, 갑 제6호증의 1 내지 3(각 사서증서인증), 갑 제5호증(합의사항), 갑 세7호증(안내장), 갑 제8 내지 10호증의 1(각 전체교수회의록), 갑 제11호증(보도자료), 갑 제12호증의 1,2(각 서신), 갑 제13호증의 1(성명서), 갑 제16호증의 1,2(각 잡지기사), 갑 제21호증(불기소사건기록), 을 제3,5호증의 각 1,2, 을 제10,12,17호증(각 세종대학보), 을 제4,7,15호증(각 유인물), 을 제8호증의 1(총장 직무집행정치가처분신청), 을 제11호증의 1,2(1990년도 세종대학교 앨범표지 및 사진), 을 제13호증의 1,2(1991학년도 신입생 예비 대학자료집 표지 및 환영사), 을 제18호증의 4(의견서), 9 내지 11,13,19,20(각 피의자신문조서), 을 제22호증(교수협의회보), 을 제25호증의 1,2(각 경고문), 을 제28호증(확인서), 을 제29호증(진술서), 을 제32호증의 2(세종대학교 교수협의회회칙등),3(의사록), 을 제36호증의 1 내지 5(대학발전위원회 회의록), 을 제37호증의 1 내지 6(종합감사결과처분요구표지 및 지적사항), 을 제39호증(증인신문조서), 을 제40호증(정관)의 각 기재 및 영상과 원심증인 소외 2, 소외 3, 당심증인 소외 4, 소외 5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위 세종대학교는 1980년도에 들어서면서 피고 법인의 실권자인 소외 7과 그 처인 소외 6의 족벌운영체제, 재단의 학교운영간섭 등을 둘러싸고 수차 학내분규가 있어 오던 중, 1987년에는 학생들이 약 100일 간 농성한 끝에 세종대학교에 교육, 복지시설투자를 충분히 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서가 작성되어 공증까지 하였으나 그 합의내용 중 이행되지 아니한 부분이 많아지자, 1988.10.경 학생들은 총장직선제, 학교시설확충, 교학협의설치 등의 요구를 내세워 농성에 돌입하였고, 일부 교수까지도 이에 동조하기에 이르렀으며, 나아가 학생들이 같은 해 11.17.부터 시작되는 1989년도 신입생 입학원서교부를 집단행동으로 방해하고 같은 해 11.21.부터 시작되는 입학원서접수 및 입학시험을 저지하려 하자 재단측이 학생들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여 1988.11.19. 총장직선제와 대학발전위원회설치를 골자로 하는 합의서를 작성하고, 당시 재단 및 학교운영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피고 법인 이사장인 소외 7, 세종대학교 명예총장인 위 소외 6과 세종대학교총장, 그 무렵 학생들의 요구에 동조하는 일부교수들로 발족된 교수협의회의 회장, 교직원노조의 위원장 및 학생회장이 이에 서명하거나 날인한 사실, 위 총장직선제는 교수 5인 이상의 추천을 받은 총장후보중 학생 5인, 직원노동조합원 5인으로 구성된 총장선출 여론수렴위원회의 동의를 얻은 인사를 전체교수협의회에서 직선으로 1인을 선출하여, 재단은 그 선출된 사람을 승인하여 문교부에 통보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대학발전위원회는 교권을 수호하고 대학의 장기적 발전과 민주화를 위하여 대학의 4개 처장, 위 교수협의회 대표 4인, 학생대표 4인, 노조대표 4인으로 위원회를 조직하여 학내 제반 문제에 관하여 심의, 조정, 건의할 것을 내용으로 하는 사실, 그 후 위 여론수렴위원회와 전체교수회의를 통하여 당시 위 교수협의회의 회장이던 소외인이 총장으로 선출되자 재단은 그를 총장으로 승인하여 줄 것을 문교부에 요청하면서 취임식까지 가졌으나 문교부당국은 총장선출에 학생과 노조가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승인을 거부하였고, 결국 소외인은 예산집행을 둘러싸고 재단측과 불화가 발생하여 1989.8.10. 사표를 제출한 사실, 이에 재단측은 그 무렵 문교부의 감사결과 나타난 소외인의 업무집행상의 과오를 이유로 같은 해 9.19. 위 사표를 수리한 사실, 한편 피고 법인은 소외인의 경우 문교부가 승인을 거부하였음을 이유로 당시의 사립학교법 및 피고 법인의 정관상의 절차를 따라 같은 해 9.18. 피고 법인의 이사회를 소집하여 소외 1을 총장으로 선출하여 문교부에 승인요청하여 다음날인 같은 해 9.19. 총장승인을 받은 사실, 그러자 위 소외 1 총장이 위 1988.11.19.자 합의에 정면으로 위배되어 재단측의 의사만으로 임명되었다는 이유로 학내소요가 재연되었고, 원고가 1988.12.경부터 그 회장으로 일하던 위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들 약 60명은, 1989.9.20. 교수회의를 갖고 재단의 일방적인 총장임명을 수용할 수 없으므로 소외 1 총장이 임명하는 보직을 거부하며, 교수직선에 의한 새 총장을 선출하겠다는 결의를 하고, 같은 해 9.20. 위 대학교 직원노동조합, 위 대학교 총학생회와 함께 서울지 방법원 동부지원에 위 소외 1 총장의 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을 하였고, 당국이 위 총장선출여론수렴위원회에 의한 학생과 노조가 소외인의 총장선출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그의 총장승인을 거부하였으므로 이번에는 교수들만에 의한 직선총장을 선출하기로 하여, 같은 해 10.3. 원고가 총장후보로 단독으로 입후보하였고 같은 해 10.6. 위 교수들은 스스로 교수회의를 열어 전체교수회의 명의로 원고를 총장으로 선출하고 재단측에 위 소외 1 총장의 임명을 철회하고 원고를 사립학교법 및 피고 법인의 정관상의 절차에 따라 총장으로 임명할 것을 요구한 사실, 원고는 앞서 위 총장후보에 입후보한 후, 위 대학교내 학보 등의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드높은 이때 재단과 문교부는 지난해 합의된 우리학교의 민주적 총장선출방식을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소외 1 교수를 총장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전체교수회의에서 재단의 일방적 총장선출을 거부하고 직선총장을 선출하기로 한바, 여러 교수님이 저를 추천해 주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떠맡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어 후보로 출마하게 되었다. 합의사항이행, 악화된 학교재정상태의 해결, 그리고 민주적 제도의 확립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출마소견을 밝혔고, 총장으로 선출된 후에도 "전구성원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안정된 대학의 발전을 위해 성심성의껏 노력하겠다"라고 인사말을 한 사실, 그 무렵 교수협의회에서는 기존의 "직선총장선출을 위한 대책위원회"를 해체하고, "학원정상화를 위한 교수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원고를 그 회장으로 선출한 사실, 한편, 학생들은 위와 같이 교수협의회가 원고를 총장으로 선출하자 위 소외 1 총장을 불법총장으로 불러 배척하고, 대신 원고를 민주총장으로 부르면서 1989.10.27.자 세종대학교 학보를 원고 명의로 발행하고, 1989년도 졸업생앨범을 제작하면서도 "총장 원고"라는 이름표시 위에 원고의 사진을 게재한 사실, 또한,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졸업준비위원회에서 1989년도 학위수여식을 원고를 총장으로 내세워 거행하려 하자, 학교당국이 위 학위수여식을 무기 연기하였으나, 위 졸업준비위원회, 총학생회 등에서는 이를 무시하고 1990.2.17. 다수의 졸업생 및 그 학부모가 참석한 가운데 비공식의 졸업행사를 거행하였는바, 위 식장에서 원고는 사회자의 요구로 졸업생들에 대한 격려사를 한 사실, 한편, 총학생회에서는 1990.2.6.부터 위 소외 1 총장 및 교무위원과 행정간부들의 교내출입을 폭력으로 저지하고 그들의 교내사무실에 난입하여 집기를 손괴하고 같은 해 2.14.에는 교내집현관에 있는 학교 행정 중심부서인 교무처, 학생처, 사무처 등의 사무실에 난입하여 전화기를 철거하여 교내통신을 방해하였고, 같은 해 2월 초순경 "세종대학교 총장 원고" 명의의 1990년도 1학기 등록금 납부고지서를 세종대학교 학생들의 주소지로 발송하고 같은 해 2.12.경부터 상당수의 학생들로부터 원고 명의로 등록금을 수납받아 세종대학교의 등록금 수납업무를 거의 마비된 사실, 또한, 총학생회측은 같은 해 2.19.부터 충북 보은군 속리산 관광호텔에서 개최된 1990년도 신입생예비대학에서 배부한 자료집에 총장 명의로 원고의 환영사를 게재하였고, 같은 해 2.28. 거행할 예정이던 입학식에 위 소외 1 총장 및 교무위원들의 교내출입을 저지하여 입학식을 거행할 수 없게 하고, 이어 같은 해 3.2.부터 교무위원들의 담당과목강의에 대한 수강을 집단으로 거부하기에 이른 사실, 그 무렵 위 대학교 학보에 "현재의 학내사태는 경제적, 계급적으로 가진 자, 지배자들이 5공으로 회귀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생에서 비롯된 것이며 소외 1체제는 학내 민주화를 외면하고 80년대 중반까지의 재단 독재적 학교운영방식을 답습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학내 비민주적 요소를 척결하기 위하여 2만 세종가족의 힘을 모아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라는 내용의 원고와의 대담기사가 게재된 사실 등은 이를 인정할 수 있으나, 나아가, 원고가 위 인정의 각 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스스로 총장자격을 참칭하여 총장행세를 하고, 또한, 위 소외 1 총장을 배격하려는 의도를 넘어 소위 운동권학생들이 위 소외 1 총장의 직무집행과 학교당국의 제반업무수행을 제지하는 행위를 선동 내지 지원하려 하였다거나 1989.10.10. 총학생회에서 주관한 "민주총장환영대회 및 합법성쟁취평화대행진"에 참석하여 총장으로서 인사말을 하였고, 원고 스스로 학생들을 시켜 원고를 발행인으로 한 학보를 발행하게 하였고, 원고 사지을 졸업앨범에 등재하도록 하였으며, 원고 명의로 등록금을 수납하도록 하였다는 점등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결과적으로는, 원고의 위 인정의 일련의 언동으로 인하여 이른바 운동권학생들 사이에서 원고가 민주총장으 로 호칭되고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이용된 사정이 있으나, 아래에서 인정하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사정은 원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루어진 것이므로 원고에게 그 책임을 돌릴 수 없다 할 것이다). 오히려, 갑 제11호증(보도자료), 갑 제12호증의 1,2,3(각 서신), 을 제18호증의 9 내지 11,13,19,20(각 피의자신문조서)의 각 기재와 위 증인 소외 3, 소외 4, 소외 5의 각 증언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원고는 위와 같이 교수협의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된 후에 보도자료(갑 제11호증)등을 통하여 자신이 재단으로부터의 정식임명을 기다리는 예비총장의 입장에 있음을 밝히고, 피고 법인의 임명이 있기 전까지는 총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명백히 하였으며, 1990.2.17.에 거행된 졸업행사에 참석하여 격려사를 한 것이나, 신입생예비대학에서 배부한 자료집에 게재된 환영사도 총장의 자격에서 한 것이 아니라 교수협의회에서 총장으로 선출되어 장차 피고 법인에 의하여 총장으로 임명될 것을 기대하고 있는 지위에서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응하였던 것인데, 행사주관학생들이 이를 총장격려사, 총장환영사로 표시하였을 뿐이고, 원고를 발행인으로 한 학보의 발행, 원고 사진의 졸업앨범등재, 원고 명의의 등록금수납행위 등도 총학생회 등에서 원고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실행하였던 것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라. 그렇다면 결국, 피고 법인이 원고에 대한 징계해임사유로 삼은 사실 중 인정되는 사실은 그 어느 것이나 모두, 원고가 피고 법인의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임명된 위 소외 1 총장을 배격하는 언동을 하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교원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로서 징계사유가 되는지의 여부와 나아가 이를 이유로 원고를 징계 해임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관하여 보기로 한다. 앞서 인정한 사실에 의하면, 위 세종대학교의 총장에 대한 임명권이 피고 법인에게 있고, 위 소외 1 총장의 임명이 그 임명권에 의하여 피고 법인의 이사회의 결의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니 이는 일응 적법한 총장임명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위 학교의 교수신분으로 있는 원고가 위 인정과 같은 총장배격 언동을 한 것은 교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것이 되고 이는 사립학교법에서 정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그러나, 수년에 걸친 위 세종대학교의 학내분규를 겪어온 피고 법인으로서도 그 대표자인 이사장 등이 1988.11.19.자 합의(피고소송대리인은 위 합의는 학생들의 강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거나 사립학교법 등 관계법규에 위배되어 무효의 것이라는 취지로 주장하나, 위에서 인정하는 합의의 경위와 그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피고 법인의 이사장 등이 위와 같이 합의에 이른 것은 비록 그 과정에 있어 학생들이 위법하게 다중의 위력을 사용하여 학사행정을 볼모로 삼아 이루어진 것이긴 하여도 그 정도가 피고 법인의 이사장등의 의사를 강요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재단측의 비리를 주요쟁점으로 하여 수년간 겪어 오던 학내소요를 그만두기 위한 재단측과 학내구성원들간의 화해의 결과라고 보여지고, 또 비록 총장의 임명권이 재단에 있고 재단이사회를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지만 그 전 단계로서 학내구성원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하여 총장을 선출한다 하여 위 사립학교법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에서 학내 구성원들에게 총장의 선출은 교수들 및 학생의 뜻에 따라 소위 민주적으로 임명할 것을 약속하였고, 위 합의에 따라 선출된 소외인을 총장으로 인정하여 문교당국에 승인요청까지 하였으나 당국으로부터 총장선출에 학생과 노조가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그 승인을 거부당하였다면, 위 합의의 당사자들인 학내구성원들에게 당국의 의사를 전달하여 다른 방법으로 학내구성원들의 의견이 총장선출에 반영될 수 있는지, 또는 교수 등 일부 구성원들의 의견만이라도 반영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등 학내분규가 재연되지 않도록 그 가능한 방법을 성실히 함께 모색하였어야 할 것이고, 또 학내구성원들로 재단측에 대하여 그 정도의 성의 있는 조치는 기대하였으리라고 할 것임에 불구하고 피고 법인이 위 합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슬리면서, 적법절차는 내세워 재단의 의사만으로 총장을 임명하였다면, 위 합의의 당사자로서 누가 총장으로 선출되느냐에 관하여 사실상 이해관계를 가지는 원고를 위시한 일부교수들이 교수협의회를 구성하여 재단측이 위와 같은 방식의 총장임명행위를 반대하고 그 총장이 임명하는 보직을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정도의 행위는 충분히 예상된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비록 원고의 그 의사표현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졌고, 위 소외 1 총장의 직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에까지 이르러 그 방법에 있어 적절한 것이 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피고 법인 자신이 앞에서 본 일련의 학내사태의 상당부분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년 가까이 위 대학교에 재직하면서 별다른 비행사실이 없이 성실히 근무하여 온 원고에 대하여 중징계인 해임처분을 함으로써 그 생계의 터전마저 박탈한 것은(을 제18호증의 20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는 10여년 전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서 네딸을 양육하고 있다) 그 징계양정을 일탈하여 징계권을 남용한 것으로 당연 무효라 할 것이다. 2. 급료청구에 대한 판단 원고에 대한 위 1990.5.4.자 해임처분이 무효임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원고는 여전히 피고 법인 산하의 세종대학교 부교수로서의 신분을 보유한다 할 것이고, 원고가 위 해임처분 후 위 대학교에서 실제로 근무하지 못한 것은 피고의 잘못된 위 해임처분으로 인한 것인 이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에게 위 해임 처분일부터 원고가 위 대학교에 복직할 때까지 위 해임처분이 없었더라면 원고가 위 대학교에서 근무하여 얻을 수 있었던 급료는 이를 전부 지급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아가, 그 액수에 관하여 살피건대, 갑 제20호증의 1 내지 5(각 급여명세서)의 각 기재에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위 해임처분당시 원고는 본봉으로 금 528,000원, 연구비로 금 487,000원, 연구보조비로 금 100,000원, 급량비로 금 30,000원, 가족수당으로 금 20,000원을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받고 있던 외에 상여금으로 위 본봉 및 연구비를 합산한 금액(1,015,000원)을 1년에 5회, 정근수당으로 위 본봉 및 연구비를 합산한 금액의 95%를 1년에 2회 각 지급받은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달리 반증이 없는바, 원고는 위 해임처분이 없었다면, 매월 금 1,748,624원[528,000+487,000+100,000+30,000+20,000+(1,015,000×(5/12)+(1,015,000×0.95×(2/12), 원미만 버림] 상당의 급료를 지급받을 수 있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해임처분일 이후로서 원고가 구하는 1990.5.6.부터 피고가 원고를 보직시킬 때까지 위 인정금액 범위에서 원고가 구하는 매월 금 1,611,766원의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여야 할 것이다. 3. 결론 그렇다면,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모두 이유 있으므로 이를 인용할 것인바, 원심판결은 이와 결론을 달리하여 부당하므로 이에 대한 원고의 항소를 받아들여 원심판결을 취소하고, 피고가 1990.5.4. 원고에 대하여 한 해고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하고, 피고에 대하여 위 인정의 급료의 지급을 명하며, 소송비용은 1,2심 모두 패소자인 피고의 부담으로 하고, 위 금원지급부분에 대한 가집행선고는 이를 붙이지 아니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어 붙이지 아니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진성규(재판장) 김희근 김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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