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노809
판시사항
국가보안법 3조 1호 소정의 국가기밀의 의미
판결요지
국가보안법 3조 1호의 국가기밀이라 함은 군사상의 기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현대전의 양상 아래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각 방면에 관한 각종 정보로서 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함이 마땅하므로 공군기지, 비료공장의 소재지, 도시와 농촌의 생활상태에 관한 정보는 위 법조의 국가기밀에 해당된다.
참조조문
판례내용
【피 고 인】 피고인 【항 소 인】 검사 및 피고인 【원심판결】 제1심 서울형사지방법원(73고합481 판결) 【주 문】 원심판결중 유죄부분을 파기한다. 피고인을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에 처한다. 원심판결선고전 구금일수중 165일을 위 형에 산입한다. 본건 공소사실중 (1)(6)(7)의 간첩방조, (2)(6)의 회합, (3)의 잠입, (8)의 편의 제공의 점은 무죄 검사의 항소는 기각한다. 【이 유】 먼저 검사 항소이유의 요지는 첫째, 피고인이 미공군기지, 진해시의 비료공장, 농촌의 생활상태등을 목격하고 이를 공소외 1에게 고지한 사실을 원심이 인정한 이상 현대전이 총력전인 점에 비추어 이는 국가보안법 제2조소정의 간첩죄와 같은법 제3조의 국가기밀죄가 성립됨은 당연하고 위와 같은 사항이 위 법조소정의 국가기밀이나 군사기밀에 해당함은 대법원의 일관된 판례임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이러한 점이 반공법 제4조 제1항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해당함은 몰라도 위 법조상의 국가기밀이나 군사기밀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여 간첩 및 국가기밀누설에 관한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죄를 선고한 것은 국가보안법상의 국가기밀 및 군사기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률위반의 잘못이 있으며 둘째, 원심의 형은 범죄사실에 비추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는 것이며, 피고인의 변호인 공소외 2(파기환송전)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첫째, 원심이 유죄로 판시한 범죄사실은 모두 우리나라의 법률의 효력이 미치지 아니하고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는 일본국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피고인에게 지령하였다는 공소외 1은 피고인과 고등학교, 대학의 동창생으로 그 대화내용도 국가기밀에 속하지 아니하는 유치한 것이고, 피고인은 가정환경관계로 한때 조총련계단체에 가입하였던 사실은 있으나 그후 재일한국인거류민단계로 전향하여 많은 반공활동을 하였던 점에 비추어보면 피고인에게 각 범죄에 대한 범의가 있었다 할 수 없음에도 원심은 이를 간과하고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고 둘째, 피고인에 대한 본건 공소사실은 포괄일죄에 해당함에도 원심이 이를 수죄로 인정하여 일부유죄, 일부무죄로 판시하므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법률적용의 잘못이 있다. 셋째, 피고인에 대한 원심양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데 있고, 피고인의 변호인 공소외 3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첫째, 원심이 유죄로 판시한 사실에 있어서 피고이니은 적국을 위한다는 인식이나 범의가 없는데 원심이 이를 빗보고 유죄로 인정하였으니 원심판결에는 판결에 영향을 미친 사실오인의 잘못이 있고, 둘째 피고인에 대하여는 반공법 제16조, 형법 제51조에 의하여 그 형의 감면이 있어야 함에도 이에 이르지 아니한 원심판결은 잘못이고 세째 원심양형은 과중하여 부당하다는데 있고, 피고인의 변호인 양헌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원심판결이 유죄로 인정한 간첩 및 간첩방조, 회합, 잠입 편의제공죄에 관하여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 모두 자백하고 있으나 이는 부자유스러운 상항아래 이루워진 임의성이 극히 의심되는 것이고 원심법정이래 위 범죄사실을 전부 부인하면서 공소외 1은 고등학교와 대학동창으로 조총련계인 사실만 알고 있을뿐 그와의 대화는 학술토론 또는 한국방문의 견문담이었고, 교부한 금품은 생활비명목으로 준것에 불과하며 8차에 걸친 한국의 내왕은 가족방문의 목적뿐이었다고 변소하고 있고, 원심이 들은 공소외 4, 공소외 5에 대한 수사기관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하더라도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을 담보할 범죄의 증명을 보강할 자료가 될 사실의 기재가 없으며, 민단계의 임원개선에 관한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도 거류민단중앙본부단장의 증명서, 동 선전국발행의 한국신문의 기재를 보아 1969.3.26. 제33회 정기중앙대회에서 있었던 것을 1968.5.7.경 위 사실을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소지누설 하였다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며 이러한 점에 비추워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은 임의성이 없거나, 허위진술된 믿을 수 없는 것이고, 그 자백을 보강할 아무런 자료도 없음에도 막연히 위 증거들을 거시하여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필경 유일한 자백 또는 증거없이 공소사실을 인정한 허물이 있고, 이는 형사소송법 제307조, 제310조를 정면으로 무시한 위법에 해당한다는 것이고, 피고인의 항소이유의 요지는, 첫째 피고인과 공소외 1과는 고등학교, 대학의 동기동창으로 재학중이 약 2년간 하숙 또는 기숙사에 같이 있어 인간적 친분이 있을뿐 사상적, 학문적, 동지관계가 아니어서 동인은 공산주의 운동을 하거나 동조하는 자로만 알았지 공작원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며, 1965.12.경 법정대학 로비에서 만나 "공소외 4, 공소외 6이 나한테 꼼짝못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그것은 장학금 지급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알었을 뿐이어서 동인이 대남공작원인 정은 몰랐다. 둘째 재일거류민단의 중앙위원회집행위원회의 결정, 재일한국학교의 모집광고는 항상 신문에 발표되기 때문에 비밀이 있을 수 없으며, 1968.7.경 공소외 1을 만난바 있으나 오랫만의 상면이어서 가족의 안부와 서로의 근황을 말했을 뿐 1969년도에 있은 민단계의 임원 선거를 이때 말했을 여지도 없고 1968.5.부터 민단에 근무한 피고인이 민단내부사정을 잘 알리도 없고, 대사관의 민단에 대한 간섭은 선거간섭이어서 선거가 없던 당시에 이에 관한 말을 했다는 것은 모순이다. 민단간부의 이기성은 말했으나 국가비밀일 수 없고 하기학교의 취지, 목적은 68.5.부터 7월까지 교포신문에 연달아 모집요령이 광고로 게재되어 비밀성이 없다. 둘째 모국방문전에 공소외 1을 만난바 없으며, 귀일후 만난바 있으나 가족의 안부와 서울의 일반적 여행견문담을 나누웠을뿐 ○○비행장 방문에 관한 말은 한바도 없고, 동소 방문시 활주로나 비행기, 격납고는 보이지도 않았고, 보지도 않었으며 교환실에 들어가거나 통화상항을 들은바도 없고, 미군과 동석하여 군기밀을 이야기 했을리도 없고 수사기관에서 처음 나온 말이다. 셋째 피고인은 1969.5. 동경을 떠나 1969.8.까지 아오모리 하찌노에 있었고, 그후 1971.5.까지 효꼬껭 하마사까에서 유기장영업을 하여 그후 동경에 올 때까지는 공소외 1을 만난바 없으므로 1970.5.18. 동경서 동인을 만나 미군부대에 관한 군사기밀을 탐문 누설했다는 공소사실은 검사의 협박에 강요된 허위진술이었다. 넷째 고속도로, 지하철, 비료공장등은 한국의 발전상을 소개하여 공소외 1의 한국에 대한 유치한 편견을 고쳐주려는 목적이었을뿐 "40대기수론"의 번역출판계획은 자랑삼아 한 것이고, 공소외 1에게 일화 5만엥을 준 것은 생활에 쪼달린다하여 보태준 것으로 편의제공죄에 해당하는줄 몰랐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살피건대, 1. 먼저 검사의 항소이유 첫째 점에 관한 판단 원심은 이사건 공소사실중 간첩의 점과 국가기밀누설의 점에 관하여는 피고인이 미공군기지, 진해시의 비료공장, 농촌의 생활상태등을 목격하고 이를 공소외 1에게 이야기 한 사실은 인정되나 특단의 사정이 없는한 이러한 점이 반공법 제4조 1항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행위에 해당될 수 있을지언정 국가보안법 제2조, 3조 1호의 군사기밀이나 국가기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제3조 1항의 국가기밀이라함은 군사상의 기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현대전의 양상아래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각 방면에 관한 각종 정보로서 반국가단체에 비밀로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포함한다고 해석함이 마땅하므로 미공군기지, 비료공장의 소재지, 도시와 농촌의 생활상태에 관한 정보는 위 법조의 국가기밀에 해당된다고 할 것임에도 이와 견해를 달리한 원심판결은 국가기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제2조, 3조 1항의 간첩죄는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가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국가기밀을 탐지, 수집하거나 누설하는 경우에 성립함을 위 법조에 명시된 바로서 이 사건에 있어 피고인이 반국가단체 또는 그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위 공소범죄행위를 한 여부에 관하여 보건대, 공소외 1은 조선고등학교 및 법정대학 동기동창으로서 약 2년간 같은집에서 하숙하거나 기숙사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평소 친분이 두텁고, 대학졸업후 수차에 걸쳐 북괴의 선전과 조국통일을 강조하였고, 동인이 조총련 아라까와지부조직부 부장으로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음은 검찰 및 원심법정에서 피고인이 자인하고 있고,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의하면 위 사실로 비추어 동인이 대남공작인줄 알았다고 기재되어 있고, 검찰에서의 공소외 4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와 원심 및 당심법정에서 동인의 증언에 의하면 공소외 1의 위 증인을 1966. 포섭하여 북한에 다녀오게 한 북괴의 공작원이었던 사실은 인정된다. 그런데, 피고인은 원심 및 당심에서 공소외 1이 대남공작원인 사실은 몰랐고 친구간의 우정으로 가끔 만나 학문에 관한 토론을 한바 있을뿐 선전교양을 받은바 없으며 1968.10.16. 한국방문에 앞서 공소외 1을 만난 사실이나 지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변소하고 있고, 원심 및 당심에서의 증인 공소외 4의 증언과 동인에 대한 사법경찰관사무취급작성의 진술조서에 의하면 "본인은 1961.부터 약 7년간 공소외 1이 주선하는 조선중앙장학외에서 지급하는 장학금을 받어 법정대학에서 공부한 관계로 그 대가로 공소외 1에게 포섭되어 1967.4.경 북한에 갔다 간첩교육을 받고 재일교포를 가장 국내에 침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공소외 1과 같은 재일지도원은 절대로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어 그의 고향이나 연령조차 모르고 체포된 후에야 동인이 법정대학생을 많이 포섭하여 입북시킨 사실을 알었으며 피고인과는 동기동창이어서 친분이 있을 것으로 아나 공산당은 점조직이어서 양자의 관계, 포섭된 여부는 알 수 없으며 공소외 1은 일상 개인에 대한 교양은 거의 없었고 대학내의 써클에서 정치적이야기나 북괴를 찬양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고 있어 위 증인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포섭되어 간첩의 지령을 받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이 점에 관한 자백의 신빙성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인은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이 원심 및 당심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고,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공소사실 제1에 관하여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의 단장 공소외 7, 의장 공소외 8, 감찰위원장 공소외 9는 1969.3.26.에 개최된 제33회 정기중앙대회에서 개선되었음이 명백함에도 피고인은 검찰에서 1968.7.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을 만나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의 임원 개선의 명단, 전단장 공소외 10계의 사퇴동향, 선거에 대한 주일한국 대사관의 간섭상황에 관한 정보를 공소외 1에게 알려주었다고 자백하고 원심 및 당심법정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는점, 공소 제5사실중 피고인이 1969.8.29.과 9.9. ○○비행장을 방문하여 동 부대의 미군 공소외 11상사로부터 기지내의 기밀사항을 설명들어 이들 탐지하고 교환대시설을 보고 기지내의 시설과 젯트기의 배치, 국내 국제통화의 빈도, 가능지역, 통신상태등에 관한 국가기밀을 공소외 1과 만나 이를 제보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검찰에서 피고인은 이를 자백하고 있으나, 법정에서 이를 부인하고 있고, 원심 및 당심에서의 증인 공소외 12의 증언에 비추워 보더라도 이를 인정할 수 없고, 달리 증거없는 점, 피고인은 1960.5.부터 7.까지 매월 장학금 3,000엥씩 9,000엥을 받었을 뿐이고 그 이후는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없다는 점과 경찰에서의 참고인 공소외 4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도 공소외 1에게 포섭되었다면 이북에 갔다왔을 것이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피고인에게 그러한 사적이 없음은 공소장 기재에 의하여 명백하고 피고인의 진술과 편지(공판기록 95정, 238정, 241정, 244정) 탄원서(동 101, 102, 107정) 진술서(동 103정) 전보, 편지여권(각 환송후 당심제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은 돗도리 현 위원장(조총련)인 부 공소외 13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 밀항 고베조선고등학교를 거쳐 법정대학을 다니는 동안 대학내 써클인 조선문화 연구회, 조총련산하 유학생동맹에 가입하였으나 특기할 정치활동을 한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고 민단계로 전향한 이후 부자간에 사상적, 인간적 갈등대립으로 고민하면서도 1970.11.경에는 당시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 문교국장 공소외 14, 영주권취득, 중앙촉진위원회 위원장 공소외 15등에 간청, 돗도리현에 출장케하여 그의 부 공소외 13의 전향을 설득케 한 사실이 있었고, 피고인의 입국경위가 노모와 가족만이 방치되어 어려운 환경과 노모의 위독한 병세로 인한 가족방문에 있었고, 1972.11. 망부의 유골을 봉안코저 귀국한후 공소외 4의 피고인이 북한에 내왕가능성에 대한 진술로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공소외 1과의 관계에 관하여 엄중한 조사끝에 별다른 혐의없어 공소외 1에 대한 공작사명을 받고 풀려났으나 실적이 없던중 본건 검거후 동일한 내용의 조사를 받고 입건 구속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이상의 여러점을 합쳐서 보면, 공소외 1로부터 기밀탐지의 지령을 받었다는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은 선듯 믿기어렵고 달리 위 자백을 뒷받침할 자료도 없다. 그렇다면 원심이 무죄를 선고한 공소사실 (4) 간첩의 점은 설사 지득한 사항이 국가기밀에 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피고인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부터 지령을 받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국가보안법 제2조, 형법 제98조 1항의 간첩죄를 구성하지 않는다 할 것이므로 원심판결은 이유에 있어 상당하지 아니하나 결론에 있어 정당하므로 결국 검사의 이 점에 관한 항소는 이유없다. 2.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사실오인 및 증거법칙위배의 항소이유를 본다. 먼저 원심판결은 원판결 각 범죄사실에 관하여 판시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로서 피고인의 법정에서의 판시사실에 일부 부합하는 진술, 증인 공소외 4, 공소외 12의 증언, 피고인에 대한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 사법경찰관 사무취급작성의 공소외 4, 공소외 12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를 들고 있다. (가) 그런데, 먼저 원심설시 범죄사실 (1)(2) 사실에 관하여 피고인은 검찰에서 자백하고 있으나 원심법정이래 환송전후의 당심에 이르기까지 (1) 사실중 공소외 1과 상면한 사실은 인정하나 그와의 대화에서 제일거류민단 중앙본부의 임원개선내용과 전단장 공소외 10계의 낙선에 따른 동향, 주일한국대사관의 민단에 대한 간섭 상황등의 고지사실과 (2) 사실에 관하여는 그당시 선거자체도 없었으므로 언급한바 없으며, (2)의 일시엔 공소외 1을 만난바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 거류민단중앙회 단장 공소외 16발행의 증명서, 민단발행 한국신문(공판기록 299,300정)의 기재에 의하더라도 위 임원선거는 회합시부터 10개월이 지난 1969.3.26. 개최된 제33회 정기대회에서 시행된 사실이 인정되어 이에 관한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은 사실과 어긋남이 자명하고, (2) 사실에 관하여는 앞서 검사항소이유에 관하여 판단한 바와 같이 그 자백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려울뿐만 아니라 위 각 사실이외에 원심이 들은 각 증거를 뜯어 보더라도 위 각 사실을 인정할 자료로 쓰일 사실의 기재가 없어 결국 피고인의 자백이외에는 타에 이를 보강할 증거가 없고, 피고인의 위 자백은 형사소송법 제310조의 규정에 따라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한 증거로서 이는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는 것임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채증법칙을 어겨 사실인정을 그릇하여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므로 이점 위 항소는 이유있다. (나) 다음 원판결 설시 범죄사실(3)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인이 1968.10.10. 14:00경 일본으로부터 쟈-ㄹ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대한민국에 입국한 사실은 피고인의 검찰 및 원심당심에서의 자백과 기록에 붙은 여권에 기재에 의하여 인정된다. 그러나 반공법 제6조 4항의 잠입죄는 반국가단체 또는 국외의 공산계열의 지령을 받고 또는 받기위하여 입국하는 경우에 성립하는 것으로 피고인이 1968.10.6. 일본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로부터 한국에 가면 국내사정을 자세히 알어다 달라는 지령을 받었다는 점은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음은 앞서 이미 실시한 바이고, 그 밖에 지령을 받었거나 받기위하여 입국하였다는 점을 인정할 아무런 자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원심이 이를 잠입죄로 인정한 것은 필경 지령사실에 관한 증거없이 사실을 인정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을 범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점 항소 역시 이유있다. (다) 원판결 설시(5) 범죄사실에 관하여 본다. 피고인이 1969.8.25. 15:00경 칼기편으로 입국하여 누이 공소외 12의 집에 있으면서 ○○비행장 교환원으로 근무하는 공소외 12의 초청으로 같은달 29. 18:00와 9.1. 18:00경 ○○비행장에 가서 공소외 11상사의 안내로 택시로 약 2분걸려 부대크럽에 들어가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였고, 두번째의 경우에는 시간이 다소 남아 교환실옆에 있는 휴계실에서 3인이 차를 마신 사실은 피고인의 자백과 증인 공소외 12의 원심 및 당심에서의 증언에 의하여 인정된다. 그런데, 피고인이 위 장소에서 공소외 11상사로부터 기지내의 기밀사항에 관한 설명을 듣고 공소외 12의 안내로 교환대시설을 구경하고 동인으로부터 동소는 신형제트기가 대부분인 한국최대의 공군기지이고 국내 각 공군기지와 통화상태의 빈도, 국제통화가능지역등에 관하여 이야기를 들어 기밀을 탐지했다는 점에 관하여 검사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의 기재에 의하면 피고인은 이를 자백하고 있고, 사법경찰관사무취급작성의 공소외 12에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에 의하면 동인이 피고인에게 그러한 내용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하여 피고인은 원심이래 당심에 이르기까지 부대에 들어 갔으나 활주로, 격납고, 비행기는 보이지도 않았고 교환실에 들어간 일조차 없으며, 1969년 5.부터 9월까지는 아오모리에 그후 1971.7.까지 효꼬껭에 있어서 공소일시에 공소외 1을 만난일조차 없었다고 이를 극구 부인하고, 검찰에서의 자백은 협박에 의하여 유도하는대로 시인한 허위진술이라고 변소하고 있으며, 증인 공소외 12의 원심 및 당심에서의 증언에 의하면 동 비행장의 활주로나 비행기는 부대정문으로부터 크럽까지의 연도나 극장, 식당, 휴계실등에서는 보이지 않는 지역에 있으며, 더구나 활주로나 격납고가 있는 일대는 출입이 통제된 구역으로서 미군들 조차 특별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고, 공소외 11상사가 안내하여 항상 셋이 있었는데 동인은 인사정도 이상의 한국말이나 일본어는 하지 못하므로 대화도 동 증인이 통역을 하였고 위 극장, 식당, 휴게실이외의 시설이나 지역은 안내한바 없다는 것이며 보안사령부에서 이 건에 관하여 조사받을 당시도 피고인에게 위와 같은 내용의 말을 했다고 한 바는 없고 단지 수사관의 질문이 동 부대내의 교환상황, 통화상태, 외국기자와의 통화가능여부, 비행기의 상태등에 관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답변을 했을뿐인데 조서상에는 이를 피고인에게 말한 것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증인은 8년간 무사고로 근무를 하고 있고, 72년도 경에도 아버지관계로 미군수사대에서 조사받은 일이 있으나 별일이 없었고, 증인은 혼자서 병든 어머니와 가족을 부양하기 때문에 극히 몸조심을 하며 위와 같은 기밀사항은 말한바 없다고 증언하고 있는 바( 공소외 11상사로부터 들었다는 기밀사항의 구체적 내용은 기소장 자체에도 아무런 기재가 없으며, 미군인이 특별한 관계가 없는 민간인에게 부대내의 기밀을 설명한다는 것도 경험측상 인정키 어렵다), 이상 법정에서의 피고인의 진술과 증인 공소외 12의 증언에 비추워보면, 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이 점에 관한 자백이나 경찰에서의 공소외 12의 진술 기재는 믿기어렵고, 그밖에 위 기밀사항을 탐지하였다고 볼 증거 없으며, 따라서 탐지하지 아니한 사실을 공소외 1에게 고지 하였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는다 할 것임에도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증거판단을 그릇하여 사실을 오인하므로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할 것이므로 이점 항소 역시 이유있다. (라) 다음 원판결 설시 범죄사실 (4)(6)중에 관하여 보건대, 원심판결이 열거한 증거등을 종합하면 범죄사실(4)의 국내체류중 판시 기재의 사항의 전문사실과 공소외 1과 만나 이러한 사항을 이야기하여 회합한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 있고, 공소외 1이 북괴를 찬양 선전하고 또 동인이 조총련 아라까와지부 조직부 부장이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이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피고인이 자인하는 이상 그러한 내용의 견문담을 함에 있어 북괴를 이롭게 한다는 정을 알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으므로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판결은 정당하고 이에 관한 피고인 및 변호인들의 항소는 이유없다. (마) 원판결 설시 (6) 범죄사실에 관하여 보건대, 위 (라)에 들은 증거와 사법경찰관사무취급작성의 공소외 17의 진술조서중 피고인과의 대화내용에 부합하는 진술기재 지하철공사가 있은 사실과 평택, 서울간 고속도로상 활주로의 존재사실, 책자 1권(40대 기수론)의 현존, 여권중 1971.9.2. 김포를 출국하여 일본 하네다공항에 입국 사실에 부합하는 기재부분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한국체류중 판시사항을 견문하고 일본에 돌아가 공소외 1을 만나 이러한 사항에 관하여 이야기한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공소외 1이 조총련 아라까와지부 조직부장을 역임한 사실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동인이 반국가단체의 목적수행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국가기밀을 수집, 탐지하는 간첩이었음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법정에서의 진술과 증인 공소외 4의 증언에 의하더라도 피고인이 공소외 1이 대남공작을 위한 비밀조직원 이었던 사실을 피고인이 위 회합당시 알고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공소외 1이 간첩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자료가 없으므로 위 견문사실을 공소외 1에게 이야기했다 하더라도 이는 회합죄가 성립함을 별론으로 하더라도(공소장에 의하면 이부분의 회합죄는 기소되어 있지 않음) 이를 간첩방조죄로 문의할 수는 없는 것임에도 원심이 이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필경 증거판단을 그릇하여 사실을 오인한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고, 이는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할 것이므로 이 점에 있어 피고인측의 항소는 이유있다. 그렇다면 검사의 항소는 이유없으므로 기각하고 피고인 및 변호인의 항소이유중 원판시 범죄사실 (1)(2)(3)(5)(6)에 관한 항소는 이유있고, (7) 사실을 당심에서 공소장변경이 있으므로 유지될 수 없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64조 6항에 따라 원심판결중 유죄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당원이 다시 판결하기로 한다. 당원이 판단하는 피고인의 범죄사실은 원판결 서두 설시사실 "동인으로부터 법정대학생 공소외 18, 공소외 4가 대남공작원으로 포섭되어" 부분을 삭제하고 "1966.3.…한국내실정, 공작지침등"을 "한국내실정"으로 고치는 외에 범죄사실은 다음 기재와 같고 이에 대한 증거는 원판결 설시증거에 사법경찰관사무취급작성의 공소외 17에 대한 진술조서중 피고인과의 대화내용에 부합하는 진술기재부분, 진해시에 비료공장이 존재하는 사실을 부가하는 외의 점은 원판결 모두 사실 및 열거한 증거를 형사소송법 제369조에 의하여 이를 인용한다. 범죄사실 피고인은 1968.10.10. 14:00경 일본으로부터 쟈-ㄹ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들어와 평택군 송탄읍 신장리 (지번 생략)소재 누이 공소외 12의 집에 있으면서 송탄읍 일원에 미공군기지가 설치되어 있는 사실을, 같은달 14. 진해 자은동에 있는 백부 공소외 19의 집을 방문하는 계재에 진해시에 비료공장이 있는 사실과 농촌의 생활상태등을 목격하고 1969.10.27. 일본에 돌아가 같은해 11.11. 19:00경 동경도 시부야 소재 중국음식점 타무로에서 공소외 1을 만나 동인에게 한국은 빈부의 차가 심하고, 서울의 뒷거리에는 쓰레기가 많고, 산비탈에는 판자집이 있으며 진해에는 비교적 큰 비료공장이 있고, 누이는 오산에 있는 미공군비행장에서 교환수로 근무하며 농촌은 개발되지 않은채 농민의 생활고가 많다는 요지의 말을 하여 반국가단체의 이익이 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공소외 1과 회합한 것이다. 법률적용 피고인의 판시 회합죄는 반공법 제5조 제1항, 제16조, 국가보안법 제11조에 해당하므로 소정형기 범위 안에서 피고인을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에 처하고 동법 제57조에 의하여 원심판결선고전 구금일수중 165일을 위 형에 산입하기로 한다. 무죄부분 본건 공소사실중, 1. 1968.5. 재일거류민단 중앙본부 사무국원으로 취직 근무하면서 민단내의 내부 기밀사항을 알고 있던중, 같은해 7월 일자불상경 18:00경 위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과 접선, 공소외 1이 북괴의 대남공작원인 정을 알면서 동인에게 최근 거류민단 단장 선거에서 공소외 7이 당선되고, 공소외 10이 낙선되어 문교국장 공소외 15등 공소외 10계 간부가 사퇴할 동향이고, 한국대사관에서 민단에 대한 간섭이 심하여 민단내의 반발이 심하다. 민단 간부들은 대부분 이기주의적이어서 조직이 허약하다. 한국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하기방학을 이용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한국에 보내 반공교육을 시킬 방침이다. 민단계 한국학원에는 학생이 잘 모집되지 않아 운영난에 봉착하였다는 요지의 국가기밀을 제보함으로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활동하는 공소외 1의 간첩행위를 방조하고, 2. 1968.10.6. 18:00경 전기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과 접선 동인에게 이번에 한국에 간다고 제보하는 한편, 동인으로부터 한국에 가서 모든 사정을 자세히 보고오도록 하라. 한국사정을 대략은 알지만 오랜 친구인 너의 말을 믿고, 듣고싶다는 요지의 국가 기밀탐지, 수집에 관한 지령을 받으므로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인 공소외 1과 회합하고, 3. 1968.10.10. 14:00경 일본항공소속 잘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하므로서 반국가단체의 지령을 받고 잠입하고, 4. (공소사실 6) 1969.8.25. 15:00경 칼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입국하여 공소외 12집에 있으면서 공소외 12를 따라 위 오산 공군비행장에 들어가서 동 비행장의 시설등을 목격하는 한편 동 부대 근무 미군 공소외 11상사를 통하여 동 기지내의 기밀사항을 설명 들어서 동 기지상황을 탐지하고 있던중, 같은해 9.20. 14:00경 칼기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 일본에 돌아가 있다가 1970.5.18. 18:00경 위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과 접선 동인에게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내에서 식사를 하고, 교환대 시설도 보았다. 동 기지내에는 대부분 신형젯트기가 있고, 동 기지는 한국에서 제일 큰 공군기지이다. 교환수는 3교대로 근무하고 통화상태는 공군기지가 있는 수원, 평택, 광주, 군산등에 통화가 많고, 국제통화는 일본, 태국, 월남, 대만등지에 통화가 가능하다는 요지의 동 기지내의 시설과 젯트기배치 및 통신상태등에 관한 국가기밀을 제보하므로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하는 한편, 동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활동하는 공소외 1의 간첩행위를 방조하고, 5. (공소사실 7) 1971.8.12. 14:00경 잘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입국하여 공소외 12집에 있다가 동월 14. 16:00경 동소 부근 송탄읍 송월동 (지번 생략) 소재 외삼촌 공소외 17집에 가서 동인으로부터 최근 미군감축으로 인하여 한국종업원도 감축되고 부대주변 주민들은 생계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실정을 듣고, 동월 18. 13:00경 고속버스편으로 상경하면서 수원, 서울간의 고속도로상에 설치된 비행기활주로를 탐문하고 동일 14:00경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소재 국회의원 공소외 20사무실에 가서 친구 공소외 21의 소개로 알게된 공소외 20을 방문하여 동인의 저서 "40대 기수론"의 일본어 번역을 협의한 후 동 책자 1권을 제공받고, 돌아오는 길에 종로 2가에 지하철공사장을 목격하여 공사현황등을 지실한 후 같은달 24. 14:00경 칼기편으로 출발 일본에 들어가서 있던중 같은해 10.12. 18:00경 위 타무로식당에서 공소외 1을 접선 동인에게 오산에 있는 미공군기지의 미군감축설이 있고 부근주민들은 생계유지를 걱정하고 불안해 하고 있다. 공소외 20의원의 저서 "40대 기수론"을 번역 출판하기위하여 접촉했다. 서울에는 지금 지하철공사를 하고 있다는 요지의 군사, 사회등에 관한 국가기밀을 제보하므로서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서 그 목적수행을 위하여 활동하는 공소외 1의 간첩행위를 방조하고, 6. (변경된 공소사실 8) 1972.1.24. 16:00경 일본 동경도 우에노소재 준다방에서 공소외 1과 접선하고 동인의 주선으로 일본 약속수행 액면 300,000엥권을 현금과 교환하게 되었음을 기화로 동인이 생활고에 쪼달린다는 사실을 알고 일화 50,000엥을 제공하여 동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라는 점에 관하여 살피건대, 공소사실 (1)(2)의 사실은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이 본원이 믿기어려운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 진술 이외에 이를 보강할 다른 증거가 없으며 (3) 사실은 피고인의 공소외 1로부터 국가기밀탐지, 수집의 지령을 받었다는 (2) 사실의 인정되지 않는이상 한국에 입국한 사실만으로 잠입죄가 성립될 수 없고, (4) 사실(공소장기재 6 사실)은 앞서 원판결 설시 (5) 범죄사실에 관하여 설시한 바와 같이 당심 및 원심에서의 피고인의 진술, 증인 공소외 22의 증언에 비추어 검찰에서의 피고인의 자백이나 사법경찰관작성의 공소외 12의 대한 진술조서의 기재는 믿을 수 없고 그밖에 증거없으며 위 (5) 사실(공소장 7 사실)은 앞서 원판결 범죄사실 (6)에 관하여 판단한 바와 같이 피고인이 공소외 1을 만나 이야기 할 당시 동인이 간첩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없고, 공소 (8) 사실에 관하여 피고인이 공소외 1에게 금품을 제공한 사실은 자백하고 있으나 이를 뒷받침할 다른 보강증거가 없어 위 자백은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없으며, 위 각 공소사실은 결국 증거없음에 귀착되어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을 적용하여 각 무죄를 선고한다. 이상의 이유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신정철(재판장) 노승두 이재후
이 판례가 인용하는 조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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